1967년7월 영국 스토크맨드빌병원 운동장에서 16회 세계척수장애인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국내인이 양궁종목을 가지고 국제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이 대회가 처음이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대회를 위해서 국내에서는 대한상이군경회의 주관으로 이미 4월에 1회 척수장애인체육대회 겸 16회 세계척수장애인체육대회 파견선수선발대회를 개최하고 고근홍, 김근수를 선발하여 이 대회에 파견하였던 것이었다.

이 대회는 비록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실시된 양궁대회였으나, 한국이 국제적 규모의 세계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은 국내에 양궁이 도입된 이래 이 대회 참가가 최초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국내양궁사상 국제대회의 첫 참가라는 의의를 지내게 된 이 대회는 당시 장애인들의 경기였던 만큼 국내외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대회였다. 우리 선수단은 짧은 대회참가 준비와 함께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의 국내 양궁수준으로 인하여 국제대회의 첫 참가였다는 사실 외에 별다른 성적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참가선수들이 세계양궁계의 실상과 함께 각종 장비, 사법등 새로운 양궁정보를 국내에 전달하는 등 세계양궁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처음 파악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1970년대에 들어와 국내에 양궁보급이 본격화되던 시기인 1970년 7월 30일 영국에서 19회 세계척수장애자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이환공 선수는 양궁부문에 참가하여 은메달을 안았다. 이대회는 장애인들만이 참가하는 소규모의 제한된 경기대회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967년 16회 대회로부터 매년 참가하였으나, 양궁으로 메달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영국일간지는 이에 대해서 "아시아인으로는 양궁경기에서 첫 입상 이었다"는 내용으로 대서특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대회의 파견이 대한궁도협회의 주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데다가, 장애인들의 경기였다는 점으로 인하여 세인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양궁선수로는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입상한 대회로 기억될 만하다.
1971년은 국제대회 양궁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내 양궁계를 놀라게 했다. 즉 1971년 7월1일 영국에서 개최된 20회 세계척수장애인양궁대회에 참가한 우리나라의 주성국 선수는 양궁 부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제대회 출전사상 첫 우승자라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 대회의 우승은 비록 장애인들이 경기였으나, 국내스포츠계에 있어서 양궁에 대한 국제대회의 메달가능성을 가장 먼저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1967년부터 세계척수장애자대회에 참석하였던 당시 우리나라 선수들은 열악한 장비와 뒤떨어진 기술에도 불구하고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한국인에 맞는 종목으로서 양궁의 가능성을 크게 기대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과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는 점은 애석한 일이라 하겠다. 이와 함께 1972년 8월 1일부터 서독 하이델베르그시에서 열린 21회 세계척수장애인양궁대회(당시 이 대회는 장애자들의 올림픽이라 하여 '휠체어울림픽'이라 별칭하였음) 에 참가한 우리나라는 조금임 선수(당시 53세,여)가 금메달을,김근수 선수(당시 41세, 남)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또 이 두 선수는 장애자 경기종목에서 양궁경기의 하나인 다체리 혼성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재활용사촌 소속인 조금임은 당시 이 양궁경기로 국제대회 출전사상 첫 여자 우승자라는 큰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한국의 국제대회 처녀출전인 1978년 제 8회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여자 개인과 단체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양궁의 붐이 조성되었다.

제 24회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양궁이 널리 알려졌으며 체계적으로 장애인 양궁경기가 열렸다. 그때 한국이 금메달(개인, 단체) 2개를 획득하였다.

1992년에는 전국양궁 동우회가 발족 되었으며, 한.일 장애인 양궁대회 초청 개최(년 초청 1회, 파견1회)도 하였으며, 1997년 1월 동우회가 협회로 변경사용 되었다.
그 후 1996년 제 10회 미국애틀랜타에서부터 2004년 제 12회 그리스아테네장애인올림픽경기까지 계속 우리나라 장애인선수들이 참여하여 좋은 성적을 내었으며, 1998년부터 열린 세계 장애인 양궁선수권대회에서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선수들이 명성을 떨치고 있다.
또 장애인양궁협회는 1999년 FESPA(아태 장애인양궁연맹)창설에 주동적인 역할도 하였다.
2003년에는 인정단체로 승인받아 2004년에 (준) 가맹단체로 승인 받고 2005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로 넘어가면서 엘리트체육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07년 1월 대한장애인양궁협회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장애인 양궁에 대한 제반 업무를 총괄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2007년에는 전세계 41개국에서 참가하는 아시아 최초의 IPC 세계양궁선수권대회의 IPC 청주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각국을 대표하는 최고 기량을 가진 420여명의 대표 선수들이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출전권 획득과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겨루기 위해 열띤 경합을 펼쳤다.
이 대회는 지난 2005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대회보다 약 30%이상 증가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대기록을 이루며 국민들에게 장애인 체육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장애인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뜻깊은 대회가 되었다.